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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 점호를 받기 위해 벗어두었던 전투화를 신으려 했는데, 이게 밤새 꽁꽁
얼어 버린 게 아닌가. 억지로 얼음덩이가 된 전투화를 간신히 발목에 걸치고 뛰어
나갔더니, 어제 밤까지 내리던 비는 하얀 눈으로 바뀌어 온 천지가 하얀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강원도 산기슭의 북풍은 윙윙 불어 댔고, 그
때의 ATT 훈련은 너무나도 힘든 상황으로 종료되었다. 그 날, 그 추위 속에서
보냈던 고통은 내가 보냈던 3년간의 군 생활을 오히려 가볍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힘이 들고 지칠 때면 그 날의 동계 훈련을 머리에 떠올리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군대 생활을 한 만큼, 사회에 나가서 누구보다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때의 나를 그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즐겁게
이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한 번도 손목을 잡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었다.
33) 정기선 중위와 최봉섭 소대장
나는 31연대 장교숙소(BOQ)와 연대의 테니스 사병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나의 군
생활은 축구와 테니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였다. 연대장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던 중, 나는 정기선 중위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물도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성 격 도 좋았으며, 특 히 내 게 무척이나 잘해주었다. 그러던 정 기 선 중위가
병사들에게 수류탄 투척훈련을 시키게 되었다. 시범을 보이기 전, 실전용 수류탄을
들고 수류탄의 구조와 투척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너무나 설명에 열중한 나머지,
안전핀을 제거한 상태에서 잡고 있던 손아귀 힘이 그만 풀려버려, 수류탄 폭발이
일어나 즉사하고 만 비참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강의를 듣던 병사들도 여러 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고, 부대 전체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정기선 중위 앞으로 꽃무늬가 아로새겨진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그의 유품인 사물을 정리하고 있던 내게 그 편지가 전해졌다. 나는 임자 잃은 그
편지를 소각해 버리려다가, 봉투를 뜯어보게 되었다. 거기에 적힌 사연은 너무나
기막힌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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