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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변명도 못하게 하면서 기합을 주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이
다. 그 날 이후부터 내 군대 별명은 ‘왕 고문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에서는 소대 별 축구 시합이 열리게 되어 소대원 중에서 축구선수를 뽑게 되었
다. “사회에서 축구 좀 해본 사람 있나?” 나는 때는 이 때라고 생각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교관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고문관! 넌 빠져 임마.”
결국 나는 제외되었고, 소대 별로 11명의 훈련병들이 선발되어 축구시합이 시작되
었다. 결과는 우리 소대가 무참하게 지고 말았다. 우리 소대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그 결과로 주말이 되자 다른 소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리만
봉 체조를 하며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훈련도 끝나갈 즈음, 우리는 마지막으로
또 다시 소대 대항 축구 시합을 가지게 되었다. 그 날도 아니나 다를까, 우리 소대는
2대 0으로 다른 소대에게 지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나는 분대장을 맡고 있
던 최병만 조교에게 내가 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졸랐다. “야, 고문관. 뭐 축구가
애들 장난인줄 알아? 저기 가서 응원이나 해.” 나는 또 다시 의견을 묵살당한 채 그
냥 앉아서 응원이나 해야 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소대는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해 3대 0이 되어버렸고, 만회할 기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때 “야, 고문관!
너 한 번 나가봐!” 하는 분대장의 외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왕 지고 있는
게임이니,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 번 인심이나 쓰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말
하면 내가 볼 때에는 그 날의 훈련생들의 축구 수준은 소위 ‘동네 축구’ 수준밖에
안 되었고, 나는 그래도 대표선수를 꿈꾸던 선수 출신이다 보니 사실상 그들과 상대
가 되지 않았다. 나는 후반전 중간에 들어가자마자, 남은 20여 분 동안에 무려 7개
의 골을 상대 골문 속에 날려 넣었다. 그냥 상대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중대 전체에 경악 스러운 사건이 되
고 말았다. 대표선수가 들어왔다느니, 축구 신동이 들어왔다느니, 소문은 입과 입을
통해 전 중대에 퍼져 나갔다. 그 날 나는 불침번도 면제 받았고, 소대 내에서 가장 귀
하신 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 악랄했던 분대장도 사회에서의 나의 전력에 대해
믿어주었고,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대하여 주었다. “야, 진작 말하지. 그러면 내가
잘 해 주었을 텐데 말이야.”해 가면서 어떻게든 잘 해주려고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의 경찰·검찰조사와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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