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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심히 설명하고 말을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사실을 두 눈으로 보고 확
인한 뒤에서야 하는 수 없이 믿어주는 그런 행태가 나를 슬프게 만들고, 이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하루 동안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
다. 어느덧 나는 부대에서 ‘스타’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모든 훈련 과정
을 무사히 마치고 자대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제일 가기 싫어하는
부대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2사단 수색중대였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내가 또 1
번으로 떨어진 것이다. 1번으로 교육부대인 2사단으로 오더니, 이번에도 또 1번으
로 가장 근무조건이 열악하고 힘들다는 수색중대에 배치된 것이다. ‘아, 이제 나는
반 죽었구나.’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멍해졌고, 절망의 그루터기에 떨어진 것 같았
다. 내가 올라탄 수색중대로 가는 트럭에 막 시동이 걸렸을 때였다. 먼지를 날리며
지프차 한대가 달려 오더니, “권오석, 권오석이 누구야?”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나의 축구 솜씨가 상부에까지 알려졌던 모양이었다. 사단에서 연대별 축구
시합을 앞두고 나를 선수로 내보내기 위해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나는 31연대 선수
로 출전했고 드디어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 포상으로 내게는 특별 휴가가 주어져 나
는 집으로 향해 달릴 수 있었다.
32) 대대 동계훈련 ATT 사건
휴가에서 돌아와 자대에 배치된 나는 짐을 풀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시작된 대대
ATT 훈련에 나가야 했다. 때는 늦은 가을이었고, 겨울의 문턱에서 동계훈련이 시작
되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빗속에서 으슬으슬 추위가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전투화
속으로는 흙탕물이 차오르고, 옷은 젖어 온 몸은 추위에 덜덜 떨렸다. 그날 밤 우리
부대는 밭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경험 많은 고참들은 땅에 물이 고이기 전에 흙을
파내고, 텐트를 쳐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옆 전우들의 체온에 서로 의지하며
새우잠을 청했다. 체온 이외에 모든 것은 차가움 그 자체였다. 밤이 깊어지자, 몸이
아파오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프다고 했다가는 ‘군기가 빠졌다’는 야단
을 맞을까 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떨기만 했다. 고참들마저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며,
모두가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 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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