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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로 인해 전역 직전 나는 군대 영창을 가게 되었다. 나도 나지만 이제 막 군 생활

          을 시작하는 신병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서, 나는 부관장교인 고형철 소령에게

          그의 선처를 부탁했다. 부관이었던 고 소령은 테니스를 좋아하여 나와 가까운 사이

          였고, 사정을 들은 고 소령은 결국 신병은 영창에 가지 않게 해 주고, 나만 사단 군기
          교육대에 보내 1주일에 걸쳐 기합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하여 주었다. 나의 힘들었고,

          길고, 지루했던 군 생활 3년은 그것으로 끝났다. 33개월 만기 제대를 한 뒤 사회로

          나왔을 때, 나는 다시 인천 정지연 사장님 밑에서 테니스 코치를 시작했다. 정지연

          사장님은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버섯에 손을 댔다가 거의 어려운 입장에 있었
          고, 나는 테니스장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버섯 사업에 몰두하시라고 하고 정말 열심

          히 해 드렸다. 버섯 공장에 치중하시는 동안, 건너편 테니스장에 손님을 다 뺏겨서

          어려웠던 것이 다시 내가 오면서부터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고, 사장님께 나는 좋은
          여건을 제공해 드렸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사장님 밑에서 코치만 할 수는 없는 일이

          라서, 나는 정지연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극구 말

          리셨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끝내 서울로 올라왔다.





          34) 서울로 가다


           서울로  올라온  나는  낮에는  테니스장에서  코치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특히 밤에는 용산에 있는 양지학원에서 경비를 봐 주면서, 청소도 해주는

          대신에 공부는 공짜로 했다. 그러던 중 나처럼 경비를 보고 청소하는 친구들 중에서,
          신 가라는 성을 가진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됐고, 자연히 나는 오랜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친구가  그  또래  집단의  ‘왕초’였다. 나는

          청소해주고  경비  일을  해주고  하는  아이들이  모두  다  나같이  공부하려고  하는
          친구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쨌든 나는 하숙비를

          줄이기  위해,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고,  그  아이들은  신이란  친구에게

          90도씩  허리를  굽히며  ‘형님, 형님’했다. 나야, 뭐  친구니까  ‘신  형’  그리고

          ‘권 형’ 했다. 그런 것이 그 친구들의 눈에는 안 좋게 보이고 비위를 상하게 했던
          모양인지, 평소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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