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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고, 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와 생각하니 바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신앙적인 힘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유년시절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가장 믿어 주셨고,
할아버지는 더욱 크게 나를 믿고 기대했으나, 오윤이 형님은 나를 허풍쟁이로 알고 계셨고,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하는 것은 늘 못마땅해 하셨다. 형님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성격이고, 한쪽을 줬으면 한쪽을
받아야 하는, 딱 정해져 있는 틀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계시는 분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그저
가족으로서 생각했고 평범했다.
나는 새벽 기도도 많이 나가봤고 수많은 기도도 드렸지만, 하느님은 제대로 몰랐다. 그러던 중 수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하느님을 깊이 알게 됐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 계셨구나 하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내가 워낙 의심이 많고 안 보여 주면 안 믿으니까,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당신이 살아계심을 믿게 해 주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하느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인데,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식구는 이제
모두 기독교인이 됐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어머니의 암 선고
얼마 전 일이다. 시골 형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암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족들이 모두 쉬, 쉬 하고 그
냥 편안하게 돌아가시도록 비밀로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오셨는데…
너무나 기가 막혔다. 아버지도 결핵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마저 암이라니.
나는 기도했다. 그런데 암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가슴에 와 닿았다. 아마도 그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성령님이고,
하느님이고, 예수님이셨던 것 같다. 형님은 그냥 어머니 나이도 있고 하니, 그저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해야 한다고 하
시며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녀왔고, 어머니만 그 이유를 모르고 계셨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만큼은 형님도,
누님도 내 생각을 가장 중요하게 들어주셨다. 그런 형님, 누님께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나는 형님께 말씀을 드렸다.
“돌아가실 땐 돌아가시더라도, 우리 형제들이 최선을 다 해보고 돌아가셔야지 우리도 후회가 없고, 어차피 가실 길이
라면 어머니도 알고 계셔야 떠나실 준비를 할 게 아니냐.” 나의 간곡한 부탁에 형님과 가족들은 전부 다 내 뜻을 따라
주었고, 어머니를 원자력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지오비(GOB) 회사 일로 대한 투자신탁 대강당에
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었다. 그리고 죄송스러웠다. 원자력병원
에 어머니를 입원케 하고, 마침 진단방사선과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 이미재 씨와 이영수 씨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왔다.
암 이라던 결과는 조사하고 조사한 끝에, 그게 암이 아닌 것이고 그저 물 혹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 역시 수술만 해
도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상태를 지켜봐서, 더 발전하면 그때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했고, 온 가
족들은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때 또 하나를 배웠다. 만약 모두가 어머니가 암인 줄 알고 쉬, 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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