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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을 짝짝 씹어대던 588의 여자. “빨리 안 하고 뭐해?” 그 동안 내가 꿈꾸어왔던 성(性)에 대한 가치관과, 모든
기대와, 성에 대한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나는 느껴야 했다.
아침이 되어 그곳을 나서자, 나는 갈 곳조차 모르고 서울 거리를 헤매었다. 마지막 휴가 뒤 나는 부대로 돌아갔고,
제대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신병으로 입대한 친구의 애인이 면회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때 부대는 비상이 걸려있어
외출이나 외박은 금지 상태였으나, 나는 신병을 남몰래 외출하게 해 주었다. 나는 당시 BOQ를 담당하던 최고
고참이었기 때문에, 하룻밤 신병을 외출시켜 줄 만한 정도의 ‘끗발’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신 신병에게 여관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고 꼭꼭 숨어 있으라고 당부했는데, 불행하게도 그 친구는 헌병의 불심검문에 걸려들어 부대로
잡혀왔다. 그 일로 인해 전역 직전 나는 군대 영창을 가게 되었다. 나도 나지만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하는
신병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서, 나는 부관장교인 고형철 소령에게 그의 선처를 부탁했다. 부관이었던 고 소령은
테니스를 좋아하여 나와 가까운 사이였고, 사정을 들은 고 소령은 결국 신병은 영창에 가지 않게 해 주고, 나만 사단
군기교육대에 보내 1주일에 걸쳐 기합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하여 주었다.
나의 힘들었고, 길고, 지루했던 군 생활 3년은 그것으로 끝났다. 33개월 만기 제대를 한 뒤 사회로 나왔을 때, 나는
다시 인천 정지연 사장님 밑에서 테니스 코치를 시작했다. 정지연 사장님은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버섯에 손을
댔다가 거의 어려운 입장에 있었고, 나는 테니스장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버섯 사업에 몰두하시라고 하고 정말
열심히 해 드렸다. 버섯 공장에 치중하시는 동안, 건너편 테니스장에 손님을 다 뺏겨서 어려웠던 것이 다시 내가
오면서부터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고, 사장님께 나는 좋은 여건을 제공해 드렸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사장님 밑에서
코치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나는 정지연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극구
말리셨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끝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가다
서울로 올라온 나는 낮에는 테니스장에서 코치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특히 밤에는 용산에 있는
양지학원에서 경비를 봐 주면서, 청소도 해주는 대신에 공부는 공짜로 했다. 그러던 중 나처럼 경비를 보고 청소하는
친구들 중에서, 신 가라는 성을 가진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됐고, 자연히 나는 오랜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친구가 그 또래 집단의 ‘왕초’였다. 나는 청소해주고 경비 일을 해주고 하는 아이들이 모두 다
나같이 공부하려고 하는 친구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쨌든 나는 하숙비를 줄이기
위해,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고, 그 아이들은 신이란 친구에게 90도씩 허리를 굽히며 ‘형님, 형님’했다. 나야,
뭐 친구니까 ‘신 형’ 그리고 ‘권 형’ 했다. 그런 것이 그 친구들의 눈에는 안 좋게 보이고 비위를 상하게 했던 모양인지,
평소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었다. 그러나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주민등록증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누가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내 주민등록증에는 59년 생으로 되어
있어 실제 나이보다 2년이 적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을 오해한 신이란 친구의 부하들이 가뜩이나 시건방지게 봤는데, 나이까지 속이면서 자기네 왕초랑 맞먹으려
든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어느 날인가 학원 수업이 다 끝난 뒤 막 책상 정리를 하고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고 있던 밤 열 한 시경, 덜컹 하고 문 잠그는 소리와 함께, 4~5명의 또래 패거리들이 손에는 각목을 하나씩 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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