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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놈은 너 뿐이다.” 나는 이 한 마디가 내게는 ‘너라도 잘 해’ 이렇게 들렸고, ‘너만이라도 살아남아 체육 정책을
바로잡아라’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청량리로 오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면서, 그 날 경태가 한 말을 수십 번 곱씹고 또 곱씹으며 되새겨 보았다. ‘그래,
누군가가 해야 해. 운동선수들은 시합할 때는 화려하고 좋지만, 선수생활이 끝나고 나면 너무나 쓸쓸하고 허탈하여,
할 수 있는 일거리도 없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뒷골목 아니면 막노동판, 아니면 머리 안 쓰는 단순 노동직 뿐이지.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면서 서울로 왔다.
사장이 되다
코치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그 때의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저 그날그날 돈 버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도 늘 배우고 싶다는 생각, 해 보지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있을 때,
마침 광장동에 있는 테니스장이 매물로 나왔다. 그 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나는 그 테니스장을 매입했다. 처음으로
사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났다. 그래서 밤새도록 테니스장 벤치에 앉아서 이 궁상 저 궁상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나는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너무너무 열심히 하니까 수강생이 자꾸 늘어서, 월
수입이 처음으로 1,000만원이 넘었다. 너무나 신이 났고 그 때 옛날 스승님을 만났다. “오석아, 너는 너무 아까운
녀석이야, 공부해라.”
그렇지 않아도 공부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터라, 29살에 대입 시험을 쳤다. 그것도 세종대 체육과에 내가 입학할
당시는 경쟁률이 14대 1이었고, 나이가 스물아홉 살이나 된 내게는 체육학과에 입학하기란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젊은 후배들에 비해 모든 것이 불리했다. 그러나 나는 당당히 합격을 했고, 1학기 때 장학금까지도 받았다. 그렇게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던 중에도, 테니스 수강생은 자꾸만 늘어나 눈 코 뜰 새 없이 너무너무 바빴다. 낮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밤에는 라이트를 켠 채 레슨을 하고, 밤 9시부터는 세종대 도서관에 달려가서 공부하고, 끝나는
시간인 자정이 되면 화양시장에 들러 늦게까지 문을 열던 영주 아줌마 집에 가서 국거리 반찬을 산 뒤 광장동까지
와서 국거리를 해놓고 나면 벌써 새벽 1시~2시였다. 새벽 5시 30분에 자명종이 울리도록 해 놓고, 자다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한 시간, 아니 십 분, 아니 일 분 일 초를 아끼며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코치들을 깨워 일을 했다. 나는 매일 매일을 즐겁게 이하며 행복을 느꼈다.
기독교
바쁘게 살며 한편으로 나는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삶과 죽음에 관해서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살다 죽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해 어느덧 종교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전통적인 불교 집안이었다. 온 가족이 거의 다 불교를 믿었고,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만 교회에 가고 싶었다.
나는 풍기 동부교회를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다녔고, 음치면서도(음악의 도레미를 몰라서) 성가대에 들어가 붕어처
럼 입만 벙긋벙긋 벌렸다. 성가를 부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그 노래를 부르는데 동참하는 동안 무엇인가 모
를 고향과도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교회는 열심히 나갔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더욱 더
교회를 찾았다. 아마도 내가 탈선 안 하고 축구나 연식정구를 하면서,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새로운 꿈과 목표를 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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