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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진단방사선과에 근무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구급차 1대를 어디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사고로 죽은 사람이
아니면 죽은 사람을 영안실로 안 들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질을 한 번 냈다. “무조건 찾아와! 몇 동 몇 호야!” 하고
그냥 전화를 끊고 들어가 봤다. 들어가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요 위에 누워 계셨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두 사람을 안심시켜 놓고, 염을 하기 시작했다. 염은 아버님이 언젠가 누구에게 가
르쳐주는 소리를 들은 대로 똑같이 해 봤다. 콧구멍, 입, 항문은 솜으로 틀어막고, 두 팔과 두 다리는 몸에 이불 호청을
뜯어서 묶고, 몸은 하얀 이불 호청으로 둘둘 말아 싸고, 끝으로 끈으로 묶었다. 그런데 시체를 집 밖으로 내가야 하겠
는데, 버팀목과 끈을 같이 묶어서 부목을 했더니 중계동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톱으로
자를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시체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8층에서 1층까지 시체를 업고 내려왔다. 막 내려오니까 구
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구급차와 함께 원자력병원 영안실까지 함께 갔다. 그리고 모든 절차와 수속을 다 밟아준 다음
얼마 안 있으니까, 그들 친척들이 왔고 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쯤에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고, 누구도 내가 누군
지, 무엇 때문에 거기 있다 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수호 엄마는 그저 우느라고 정신이 없고. 그래서 혼자서 슬슬 내려
오는데,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잘 했어요.’ 하면서 칭찬해 주는 것 같았다.
서언 기도
그 때 마음 속 어디에선가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아무 인연이 없는 분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지켜 주었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하느님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그 날 심어주셨다. 나는 그 날 하느님께
서언기도를 했다. ‘나의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였다. 나도 모르게 한 나의 서언기도였다. 주님께서 미
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니까 축복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날의 서언기도는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 날 이전까지
나는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천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 날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남을
위해 사는 길에 나서게 되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때는 누구도 내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미
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 성격이 남에게 욕먹는 성격도 아니고, 그 때까지 난 별 무리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서언기도를 하고 난 뒤부터는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자꾸만 불쌍한 체육인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만 남이 먼저 눈
에 들어왔다. 가족밖에 몰랐던 나에게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때의 체험 때문에 나는 한 번도
누구를 법에 고소해 본 적이 없다. P씨 문제를 놓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고소를 안 하려고, 사랑으로 대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나에게만 해당된다면 또 참겠는데,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었고,
종래에는 하느님께서 욕을 먹게 될 것 같아서 참 가슴이 아프다. 지금이라도 뉘우쳐 주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늘
진실이 이기는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어려운 사건
나는 이번에 소중한 것을 얻었다. 자유의 소중함. 그것은 곧 시간의 소중함이었고, ‘오늘 내가 무의미하게 보낸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었던 오늘이다.’라는 것을 알았고,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나는
이번에 돌아가면 자유로운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참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는 경우를 만날
것이다. 흑이다, 백이다. 이렇게 뭔가가 분명하면 좋은데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인 경우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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