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V5_Book_EsseyBiz
P. 94
제식훈련 16개 동작을 시작하는데, 분대장인 최병만 조교가 올라오더니 즉석에서 멋들어지고 절도 있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 뒤 1번부터 몇 번까지 앞줄에 있던 우리들을 나오게 하더니 제식동작을 시행하게 했다. 다른 훈련병들은
눈치껏 시범하는 조교를 따라 잘 하는데, 유독 나만이 따라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교는 “이 고문관 X끼!” 하더니 냅
다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군대에 가기 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던 교련시간에 다들 해 본 것이라, 조금만 상기
시켜 주면 곧잘 기억이 나서 전부가 다 이상 없이 척척 잘 해냈는데, 오로지 나만 엉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 때
문에 교련시간에 단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던 나는 제식훈련을 해 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도저히 그들을 따라 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학교 다닐 때 뭐 했어?” 하면서 전투화로 차고, M16 소총 개머리판으로 등을 내리치는 등 기합은 연신
계속되었다. 나의 학창시절을 모르는 교관이나 조교가 볼 때, 나는 천덕꾸러기 같은 고문관 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잘 하는 데 나만 제식훈련을 못하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운동선수라서 못 배운 줄은 모르고, 또 알려고 하
지도 않았다.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변명도 못하게 하면서 기합을 주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부터
내 군대 별명은 ‘왕 고문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에서는 소대 별 축구 시합이 열리게 되어 소대원 중에
서 축구선수를 뽑게 되었다. “사회에서 축구 좀 해본 사람 있나?” 나는 때는 이 때라고 생각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교관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고문관! 넌 빠져 임마.” 결국 나는 제외되었고, 소대 별로 11명의 훈련
병들이 선발되어 축구시합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우리 소대가 무참하게 지고 말았다. 우리 소대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그 결과로 주말이 되자
다른 소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리만 봉 체조를 하며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훈련도 끝나갈 즈음, 우리는 마
지막으로 또 다시 소대 대항 축구 시합을 가지게 되었다.
그 날도 아니나 다를까, 우리 소대는 2대 0으로 다른 소대에게 지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나는 분대장을 맡고
있던 최병만 조교에게 내가 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졸랐다. “야, 고문관. 뭐 축구가 애들 장난인줄 알아? 저기 가서 응
원이나 해.” 나는 또 다시 의견을 묵살당한 채 그냥 앉아서 응원이나 해야 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소대는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해 3대 0이 되어버렸고, 만회할 기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때 “야, 고문관! 너 한 번 나가봐!” 하는 분대장의 외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왕 지고 있는 게임이니,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 번 인심이나 쓰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말하면 내가 볼 때
에는 그 날의 훈련생들의 축구 수준은 소위 ‘동네 축구’ 수준밖에 안 되었고, 나는 그래도 대표선수를 꿈꾸던 선수 출
신이다 보니 사실상 그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후반전 중간에 들어가자마자, 남은 20여 분 동안에 무려 7개의
골을 상대 골문 속에 날려 넣었다. 그냥 상대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중대 전체에 경악 스러운 사건이 되고 말았다. 대표선수가 들어왔다느니, 축구 신동이 들어왔다느니, 소문은
입과 입을 통해 전 중대에 퍼져 나갔다. 그 날 나는 불침번도 면제 받았고, 소대 내에서 가장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 악랄했던 분대장도 사회에서의 나의 전력에 대해 믿어주었고,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대하여 주었다. “야, 진작 말하
지. 그러면 내가 잘 해 주었을 텐데 말이야.”해 가면서 어떻게든 잘 해주려고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의 경찰
- 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