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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돈이 뭔지 그 돈에 한이 맺힌다. 어린 나였지만 가난에 대해 뼈저리게 아픔

          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돈이 없어서 무력하게 죽음을 강요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

          나 큰 축복인지… 살아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사람은 왜 사는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며, 후회 없는 삶일까? 나는 너무나 많은 질문을 갖기 시작했다.

          가난이 뭘까, 무지가 뭘까, 왜 사람들은 그렇게 ‘공부, 공부!’ 하는가, 그야말로 그
          때부터 내게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그때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하셨

          던 말씀과,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나를 보시며 하셨던 말씀들이 생각났다.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 오석아, 너는 총명하니까, 조금만 하면 금방 잘 할 수 있을 거
          야.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래 맞다. 나중에 사람답게 살려면 공부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니, 그 때부터는 마음

          이 너무 급하고 급했다. 나는 그때 막 사춘기였고, 이성에도 눈뜨기 시작했다.





          19) 첫사랑


           주인집 둘째 딸을 보아 오면서 늘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사랑한다거나 좋

          아한다는 말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길 정도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사춘기 시절에 그 집에 세 들어 산다는 열등감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

          보니 더욱 더 그 아이 앞에만 서면 내 자신이 작아지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냥 먼 곳에서 바라보기만 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행복이었고, 어느덧 그 아이는 내 꿈의 전부가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은 그 때가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하루는 학교를 가는데 앞에 가고 있는 그 애 앞을 차마 앞서 갈 수 없어 한
          참 뒤에 뒤처져 가느라고, 지각해 교문에서 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의

          인생은 오직 그 아이  하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이 다음에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눈물 나도록 아껴 주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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