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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연식정구


          금선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풍기고등학교 정구장에서 캉! 캉! 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이 공치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어 했다. 한동안은 시간만

          나면 나는 그곳에서 홍선이와 인상이가 정구치는 것을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

          히 정구채를 빌려서 좀 쳐봤는데, 그 때 풍기정구협회 임원으로 계시던 강 전무님과

          엄 전무님의 눈에 들어, 연식정구를 한 번 해 보라는 권유를 계기로 그 때부터 나는
          연식정구를 시작했다.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원래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었기에 금

          방 동료들 수준을 따라갔고, 단 6개월 만에 정구부 주장이 될 수 있었다. 축구 할 때

          도 그랬지만, 연식정구에서도 운동을 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보니, 남보다 실력이 더
          빨리 느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하고 집중했다. 그래서 친

          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불꽃’이다. 뜨겁고 정열적이란 뜻도 있지만, 그만큼 아주

          열심히 한다는 뜻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열심히 운동을 했고, 풍기에서 정구하시
          는 분들은 또 내게 큰 기대를 걸게 됐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안동 시합에 첫 출전했

          고, 그곳에서 대구 농림고등학교를 만났다. 대구 농림고등학교는 10년간 우리나라

          고등부 연식정구 부문을 석권하고 있었으며 한일간 교환경기에는 항상 한국대표로
          나가는 한국 최강의 고등학교 연식 정구 팀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우리

          가 대구농림고등학교의 상대가 안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기는 3대 2로

          근소한 차이로 우리가 졌을 뿐이었다.


          그 경기에서 그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강력한 인상을 줬고, 대구 농림고등학
          교의 김남규 감독 선생님께서는 경기가 끝난 후 찾아와서, “참 좋은 선수다. 잘만

          하면 대선수가 될 수 있겠다.” 말씀하시고, 감독 선생님을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하

          시더니 날 보고 “다음에 또 보자!” 하고 싱긋 웃으시고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주
          무 감독은 박성훈 선생님이셨고, 나는 대구 농림고등학교에서 키우고 싶은 유망주

          선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학을 오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났고, 그날 밤

          오랜만에 밤늦게 들마루에 나가서 하늘을 보면서 너무너무 기뻐했던 기억을 잊어버
          릴 수가 없다. 그날 밤 나는 축구 할 때 보았던 그 반짝이는 별빛들을 다시 볼 수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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