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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많은 후원회 분들께서는 모교 3년 우승도 시킨 주역이고, 또 풍기의 자랑이니 풍
기를 위해서 풍기중학교에 진학해서 축구를 계속해 달라는 것이었고, 나는 그래서
결국 풍기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1학년부터 거의 주장을 맡다시피 팀을 이끌었고, 2
학년 때에는 박해덕(체육선생님 겸 축구부 코치)선생님은 3학년 선배를 젖혀두고
나를 축구부 주장으로 뽑아 주셨다. 위계질서와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운동부에
서 후배가 선배를 제쳐 두고 주장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됐지만, 선생님 왈, 실력이
월등하면 주장을 시켜야 된다고 하셔서 나는 주장이 됐고, 부원들을 열심히 연습시
켰고, 그 결과 예천대회 등에서 우승했다. 그렇게 나는 그런대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늘
감사했다. 그 당시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축구가 없는 내 인생은 생각할
수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2학년 중반이 되자, 축구부가 갑자기 해체되었다. 이유는 시골학교의 재정
사정 때문이었다. 나는 그 날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해 온
것이라고는 축구밖에 없는데, 축구를 할 수 없게 되다 보니, 나는 그때 뭘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수업에 들어가 보니 도저히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고,
공부도 아는 게 어느 정도 있어야 공부를 하는데, 나는 운동을 하느라 원체 아는 게
없었고, 구구단도 맞춤법도 잘 몰랐다. 그래서 나로서는 학교 수업은 그냥 ‘잠 자는
시간’이었다.
내가 남달리 축구를 잘했던 것은, 소질보다는 노력이었고 끈기였다. 남들은 그냥 축
구를 했지만, 나는 가슴에 불을 안고 뛰었다. 남들은 그냥 경기를 했지만, 나는 목숨
을 걸고 달렸다. 아마도 그들보다 정신력에서 앞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가슴에 불
을 달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축구부는 결국 재정 문제로 해체되었고, 나는
그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하고 학교를 벗어나 풍기 소백산 밑에 있는 금선정 맑은 물
에 발을 담갔던 기억, 소백산 비로봉을 올라가서 그 울분을 토해냈던 기억과, 메아리
가 들려주었던 기억, 그런 추억들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때 두 세 달은 유일
한 내 인생의 휴식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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