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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친구들과의 사이는 서로 서먹서먹해지고 어색하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학교가
원했던 대로 경상북도 도교육감배에서 또 다시 우승을 해서 영원히 모교에 3년 우승
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모교에 가서 그 우승기를 볼 때면, 남 모르는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그 우승 뒤에는 꿈 많은 한 소년의 꿈이 짓밟혀
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특히 안
동 북부지구 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6대 0, 8대 0, 9대 0이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고, 도내 초등학교부에서는 어떤 학교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는데, 다른 어느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을 때보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안동
이고, 내가 안동 권 가라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시합을 뛸 때는 아버지가 저
만치 뒷전에서 기침을 콜록거리시면서도 함성을 지르고 계셨다. 내가 최우수 선수상
을 받는 자랑스러운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어디엔가 숨어서 나
를 지켜 보셨고, 나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나는 곳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었다. 그
것이 두고두고 마음의 빚이 되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께 너무 송구스럽
다. 그 당시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나는 축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정사정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면서 늘 1학년만 들어갔고 초등학
교 조차도 남들은 6년이면 하는 과정을 나는 7년을 다니다 보니 체육중학교에 나이
때문에 전학 할 수 없게 됐다. 꼭 축구선수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나이 때문에 체육
중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사건 중에 하나의
사건이다. 많은 날을 괴로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체육중학교로 진학하여 축구선
수로 성장하려는 소년의 꿈은 이렇게 좌절해야 했다.
16) 풍기 중학교로 진학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구나 할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체육중학교에 대한 꿈을 접고
축구명문 학교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풍기중학교에서 축구팀을 창단한다
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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