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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용호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나는 싸움을 끝낸 후 집에 들어갔는데, 어
머니께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를
따라 용호네 집으로 갔다. 용호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평소에 아주 잘 아는 사이였
다. 어머니는 극구 사과를 하셨고 치료비 일체를 물어주시기로 약속을 하시고, 나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거듭 사과하게 했고, 용호 어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애
들이 그럴 수도 있죠.”라면서 관대하게 대해 주셨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목에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평소에 어머니는 남하고 싸우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우리를 야단치셨던 분이라,
내가 야단을 맞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그 날도 나는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지나가
는 말로 한 마디를 슬쩍 하시고 그 다음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말씀은
이렇다. “녀석. 두들겨 맞고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실컷 때려주고 치료비를 물어주
는 편이 더 기분 괜찮네.”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시는 것이었다. 물론 야단을 맞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왜 야단을 치지 않으셨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되었
다. 이미 크게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있던 그 자체가 사실상 벌을 받고 있는 일이었
던 셈이다. 나는 속으로 참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후에도 나는 참 많은 싸움을 했
다.
9) 태준과의 싸움
어느 날은 풍기초등학교 후문에서 가게를 하는 집 아들인 태준이와 싸우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태준이도 고집이 무척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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