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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셔서 고생만 하셨다.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계실 때, 어리고

          어린 3남 4녀를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며 키워서 형님과 남동생은 공무원으로, 누님과

          여동생 둘 다 시집을 보내고, 여동생은 건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시켜 학원 강사

          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잘 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오규와 막내 경희,
          둘 밖에는 없다. 오늘의 우리 식구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어머니

          는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궂은 일이란 궂은 일은 언제나 다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

          머니는 그런 궂은 일을 하시는 동안에도 내게 “너는 운동 선수이기 때문에, 잘 먹어

          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식구들 몰래 식당을 겸하는 정육점에 데려
          가서 고기를 구워 먹이시곤 했다. 식구들 모두에게 고기를 먹일 형편이 못 되셨는지

          라, 나만 몰래 데리고 나가셔서 고기를 먹이고, 나중에 옷에서 고기 냄새가 나지 않

          게 나중에 집에 들어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 당시는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어느 부모인들 고생을 안 해본 부모들이 있었겠느냐 만은, 나의 어머니는 특히나 더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주변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어렵게 살까’ 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 한 두 번이 아

          니었다. 힘드시고 고통스러우실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3남 4녀만을 바라보

          고 사셨다. 어머니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여자는 여필삼종(女必三從)이라고, 태어나

          서는 부모를 따르고, 결혼을 해서는 지아비를 따르며, 지아비가 죽으면 자식들을 따
          르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말씀대로 실행

          하셨고, 누님이나 동생들에게 늘 그렇게 가르쳤고, 나와 남자들에게는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할 때는 반드시 그 아내가 몸이 아프거나, 돌아갈 친정이 없거나, 살
          아갈 다른 방안이 없거나 할 때는 절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적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정은 어머니만의 성역이었다. 반드시 지켜야 하고, 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시면서 살아오셨고, 또 그것을 일생 동안 실천해 오
          신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셨다.


          나도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가정을 지키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그런 내 심정

          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젖어 있었

          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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