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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시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손

          찌검을 하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있을 때는 절대로 어머니에게 손

          찌검을 하시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면 ‘해결사’가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내 앞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
          으셨나 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참 싫었다. 능력도 없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손찌검 하고, 실속

          없는 일만 하고, 자신보다도, 가족보다도, 친구와 이웃을 더 사랑하시는 그런 분이셨
          다. 나는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나 역시도 그

          런 점과 할아버지의 성품을 섞어서 닮은 것 같다.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사업도 잘

          하셨고, 재력가셨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셨던 분이셨다. 그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늘 병으로 한 평생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요즘 폐

          병은 병 취급도 안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폐병은 걸리면 거의 죽는 병으로 여

          기고 있는 때였다.(폐결핵 백신은 195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상용화가 시작되었

          음.) 아버지는 수혈로 근근이 생명을 연장해 가셨고, 늘 수혈, 즉 핏값으로 병원 치료
          비로, 돈을 내다 보니 가족들의 살림살이는 오랜 병 구완으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

          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내 자신이 어리석었다. 아버지인들 그렇게 무능력하고 싶
          어서 무능력했겠나? 얼마나 당신께서 하고자 하는 일이 안 되셨으면, 집에서 그렇게

          어머니께 화풀이를 하셨을까? 내가 너무 어려서 도와드리지 못했고, 또 그런 아버지

          의 쓰린 속을 몰라드렸던 것이 내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송구스럽다.

























                                        풍기읍의 옛날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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