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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좁은 동네인지라 수소문 끝에 엿장수 고물상에서 큰아버지가 놋그릇을 찾아 오

          셨다. 놋쇠는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긴 했지만, 깨지지는 않는지라 놋그릇을 수리해서

          다시 쓰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아버지가 그 날 처럼 그렇게 화를 심하게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큰아버지의 매

          타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미국 대통령 부시가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

          을 잡으려고 하듯이, 필사적인 모습으로 소매를 걷어붙인 큰아버지 앞에서 나는 매
          질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큰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할아버지께 구원요청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할아

          버지께서 안 계시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할아버지가 문을 안 열어 보시면 어떡
          하나’ 초조한 가운데 큰아버지의 성난 회초리는 시작됐고, 주위가 소란해지자 이내

          할아버지가 “뭐냐? 아범아.” 하시면서 사랑채 문을 열고 등장하셨다. 나는 할아버

          지의 등장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내가 저지를 일들

          을 소상하게 말씀 드렸고, 자초지종을 들은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보다 더 크게 노하
          시면서, “맞을 짓을 했다!”고 하시면서, “저 놈은 크게 혼을 내야 한다!”고 하시

          면서 회초리 더미 한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시면서 “그 놈 이리 들여보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군주가 신하에게 명령하듯

          워낙 위엄이 가득한지라,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감히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내게
          얼른 사랑채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의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셨다. 이거 혹
          떼려다 혹 붙이는구나 싶었다.






















                                     단양팔경 중 제비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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