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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할아버지의 자상함과 남다른 이해력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

          끼게 해 준다. 그날 밤 나는 창문에 비친 교교한 달빛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고,

          오랫동안 그날 밤 달빛의 정겨운 느낌이 그대로 내 가슴 속에 지금도 남아있다. 할아

          버지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꼭 안아 주시는 할아버지의 품에서 나는 잠이 들
          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꼭 친구 같고, 애인 같고, 아버지 같은 할아버지의 사

          랑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누구보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

          던 것 같다.

          뒤늦었지만, 비로소 할아버지의 따스하고 지혜로운 사랑을 기억에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나도 이제는 내 소중한 사람에게 할아버지처럼 따스하고

          지혜로운 사랑으로 관대하게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던 할아버지의 따스함과 사랑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은, 어느새 나도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인생 전체에서, 아버지보다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더 많다. 큰 집과 우리

          집을 통틀어서,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 중에서 오로지 나 하나에게만 관심을 보이셨
          다. 할아버지의 나에 대한 편애는,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심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나를 형이나 누나, 동생들 모두가 부러

          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다.


          큰 집 형님들도, 우리 집의 형님들도, 누님도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할아버지 근처
          에도 얼씬도 못했을 정도로,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유일하게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나를 무릎에 앉혀 놓으시고 당신께서 살아오신 이야

          기, 옛날 이야기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렸고 할아버지가 남겨 주신 몇 가지 말씀만 기억에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내

          게 줄곧 “너는 마음씨도 따뜻하고, 통도 크고, 머리도 똑똑해서,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다. 큰아버지나 아버지를 닮지 말고, 큰 사람이 되어라. 나는 네 어미가 너를 낳던
          날, 엄청난 꿈을 꿨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았던 그 ‘꿈 이야기’를 나에게만 들려주시곤 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오늘까지도 나는 그 꿈 이야기를 누구
          에게도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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