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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저냥 사셨고 늘 아프셔서, 건강하신 모습을 살아 생전에 뵌 적이 없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다. 나는
할아버지는 참 좋아했는데,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무척이나 죄송스럽다.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큰아버지께도
뒤늦게나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큰 아버지는 도담극장을 운영하고 농협 지점장도 하시면서 지방유지로 삶을 마치셨
는데 뒷방에서 하는 마작이 유일한 취미였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관계가 좋지 않았
던 때문인지 어머니 조차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큰아버지 도움은 받지 않으
려 하셨다. 큰아버지는 잘 살고, 생활이 넉넉한 반면 우리 집은 아버지가 사업 하시
다 어려워지다 보니 돈 많은 큰집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특별
히 남는 아이스케키 사건과 큰아버지 놋그릇 사건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4) 아이스케키 사건
내가 얼마나 개구쟁이였는지 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두 개의 사건이 있었는데 하
나는 아이스케키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놋그릇 사건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
다.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나는 아이스케키가 너무도 먹고 싶었다. 아이들이 먹는 아
이스케키가 먹고 싶어서, 큰아버지께 그 말씀을 드렸는데 도무지 사 주실 생각을 하
지 않으셨다.
나는 어떻게 하면 시원하고 맛있는 아이스케키를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고 쾌재를 불렀다. 그 당시 단양 마늘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었
고, 그 단양 마늘 한 대궁을 아이스케키 하나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살던 큰아버지 곳간에는 그 좋다는 단양 마늘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지나
가는 아이스케키 장수를 산모퉁이에 불러놓고 마늘 두 접을 곳간에서 꺼내어 메고
가서 건네 주고, 맞바꾼 아이스케키를 통째로 산으로 들고 올라가서 바닥날 때까지
하루 종일 먹었고, 급기야 배탈이 나서 며칠 동안 설사로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 비
밀은 지금까지도 누구도 모른다. 나 혼자만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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