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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놋그릇


          자라나는 동안 어찌 사건이 한두 개뿐이랴?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또 한 번의 기
          억에 남는 사건은 큰아버지의 놋그릇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내 기억 속에 너무나 생생

          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중에 들통이 나서 곤혹을 치렀는데,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다.

          그 날 따라 무척이나 동네를 지나는 엿장수의 철커덩 철커덩거리는 엿가위 소리가

          정겹게 들렸고, 달콤하고 쫀득한 엿이 엄청 먹고 싶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때만 해도 먹거리가 별로 없는 시기였고, 군것질거리라고

          해 봐야 아이스케키나 엿, 밤 늦게 소리를 지르며 다니는 “찹쌀떡 사려!” 하는 소
          리의 찹쌀떡이 고작이었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왕사탕이 군것질거리의 거의 전

          부이다시피 한 시절에, 엿은 우리들에게는 참 먹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엿장수가 지나갈 때마다 번번이 엿을 살 돈도 없었고, 용돈도 구할 수 있는 처
          지가 못 되었는지라 고민에 고민을 하던 중, 친구들과 엿을 바꿔 먹을 구리줄과 양은

          조각 등을 구하러 다녔다. 그 중에서도 놋쇠(황동)는 엿을 많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엿을 어떻게 하면 실컷 먹어볼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고 생각하던 끝에, 큰아버
          지가 꼭 귀한 손님이 오시거나 큰 가족들이 모이는 날에만 사용하시던 누런 놋그릇

          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행동에 옮겼다.


          놋쇠 밥그릇, 놋쇠 국그릇, 놋쇠 수저를 싹 쓸어 담아 엿장수에게 갔더니. 너무나 고

          급이고 새 것이라 안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엿을 먹고 싶었던 나는 그 놋쇠 그릇과 수저 등을 망치로 쳐서 찌그러뜨려

          결국 엿 판을 통째로 받아 들었다. 그런 뒤 속이 달아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더 이상 안 들어갈 때까지 먹고 나니까, 나중에 속이 뒤집어져서 죽는 줄 알았다.

          그 사건 이후에 나는 언제고 큰아버지에게 혼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초조함과 두

          려움, 그 날 이후 나는 늘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다. 엿 한 번 실컷 먹고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그 날은 가족들이 모이

          는 날이었고, 놋그릇이 없어진 것을 큰아버지가 아시면서 노발대발 하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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