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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별들과 나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나는
부모님께 상의를 드리고 여름방학 동안 대구농림고등학교로 가서 그곳 선수들과 함
께 연습을 했다. 김남규 선생님은 대단히 만족해 하셨고, “참 빠르다. 그리고 임팩
트 순간이 참 정확하다.” 하시면서, “열심히만 하면 분명히 한국에서 대선수가 되
겠다.” 라고 내게 용기를 주셨고, 나는 곧장 전학 수속을 밟고 짐을 옮기고 나서 대
구에서 풍기로 가는 기차 안에서 세계적인 연식정구선수가 되는 꿈을 꾸며, 마냥 즐
거웠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런데 전학을 가려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전학 가려면 그 동안 육성회비부터 면제해 준 것을 모두 내고 가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가 막혔지만, 학교가 연식 정구부를 살려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보고자 하
는 학교 측 입장은 너무나 완강했고, 그런 학교 측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지만,
나에게는 축구에 이은 큰 쇼크였다. 사실 좀 더 넓게 생각해 보면 풍기 출신 중에서
연식 정구 한국대표 선수가 나오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
을 텐데 싶었지만, 학교 측 주장은 완강했고, 나는 또 한번 타인에 의해 꿈이 좌절되
고 말았다.
청소년기에 있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으로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타인들에 의
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꿈이 좌절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
았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처음으로 뒷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울면서 학교를 안
갔다. 어머니도 더 이상 학교에 가라고 말씀을 안 하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박성훈 체육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오석아, 문 열어. 선생님이다.”, “싫어
요.” 나는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고, 선생님은 들어와 말씀하셨다.
“내가 비록 기성세대지만, 너에게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석아, 일단 학
교에 나가자.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내 제자야. 분명히 너는……” 선생님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말이 없음을 아시고,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나는 일단 선생님을 따라
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시 나가긴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마음에 상처를 받을 대로 받
은 뒤였는지라, 도무지 운동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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