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V5_Book_EsseyBiz
P. 72

나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이런 결심을 했다. ‘나는 이 다음에 크면 내 가족을 철저히 잘 챙기고, 특히 사랑하는 아내가
         생기면, 아내가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날 정도로 잘해 줘야지. 나는 아버지처럼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지.’ 늘
         그런 다짐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또래 아이들이 남 몰래 다들 한 번쯤은
         해 볼 법한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 커피숍이나 당구장 한 번 출입한 적이 없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 이였다.



         그것은 오로지 내 인생의 목표가 가족, 특히 나중에 있을 내 아내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기 위해서, 옳지 않은 일, 부끄
         러운 일을 안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다. 오직 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으로 아내를 사랑해 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

         하면, 나는 이미 그 때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생각이 꽤나 조숙(早熟)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아버지는 글을 참 잘 쓰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네 사람들 한문도 모두 대필해 주셨고, 아버지가 한문으로 무엇
         을 적어 주시면 나는 그것을 들고 십 리, 이십 리 길을 달려가서 전달해 주곤 했다. 나는 그런 심부름을 하면서도 한 번
         도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당시 아버지의 권위는 우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

         히 아버지에게 싫은 표정을 짓는다거나, 뜻을 거부하거나, 도전장을 낼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고,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리에게 예법을 가르쳐 주시곤 했다.



         우리 가족 3남 4녀 가운에서도,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처럼 특별히 나를 아껴 주셨다. 할아버지에 이어서 아버지의 사
         랑도 나는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도 종종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가 보면 어머니의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
         었고,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미웠다. 식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시면, 아버지

         는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있을 때는 절대로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시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면 ‘해결사’가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내 앞에서 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나 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참 싫었다. 능력도 없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손찌검 하고, 실속 없는 일만 하고, 자신보다도, 가족
         보다도, 친구와 이웃을 더 사랑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에 다짐을 했지
         만 나 역시도 그런 점과 할아버지의 성품을 섞어서 닮은 것 같다.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사업도 잘 하셨고, 재력가셨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셨던 분이셨다. 그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늘 병으로 한 평생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요즘 폐병은 병 취급도 안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폐병은 걸리면 거의 죽는
         병으로 여기고 있는 때였다.(폐결핵 백신은 195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상용화가 시작되었음.) 아버지는 수혈로 근

         근이 생명을 연장해 가셨고, 늘 수혈, 즉 핏 값으로 병원 치료비로, 돈을 내다 보니 가족들의 살림살이는 오랜 병 구완
         으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 72 -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