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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
         큰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잘 관리해서, 그 지방에서 제일가는 갑부이자 유지(有志)로 지역에서 인정받으면서

         사셨으나, 정작 나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폐병마저 얻게 되어 47세라는 한창 나이에 일찍 돌아가셨다.
         큰아버지는 칠성이 형님과 오상이 두 형제를 두셨다. 나를 무척이나 아껴 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큰아버지와
         아버지 사이는 급속히 나빠지셨고, 아버지는 정든 고향을 떠나 돌아가시기까지, 한 번도 우리 집에 온 기억이 없다.



         나는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계신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두 분이
         사이 좋게 사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혈육이라곤 두 형제 밖에 없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자주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주변에 말씀하시곤 했다. 나도 그런 큰아버지가 싫을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가족은 화목하게 지내 모든 일이
         다 성공한다 했건만 두 분이 서로 위하면서 사셨더라면 두 분 다 얼마나 서로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었을까… 지금 생
         각해도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다.



         아버지는 훈장 선생님이 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글을 참 잘 쓰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한문 글씨
         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명필이셨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큰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
         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서 재산도 많이 물려받아 그런지는 몰라도,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고, 평소 힘든 일을 하
         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저냥 사셨고 늘 아프셔서, 건강하신 모습을 살아 생전에 뵌 적이 없던 것 같다. 돌이켜보

         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다. 나는 할아버지는 참 좋아했는데, 큰아버지와 아
         버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무척이나 죄송스럽다.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큰아
         버지께도 뒤늦게나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큰 아버지는 도담극장을 운영하고 농협 지점장도 하시면서 지방유지로 삶을 마치셨는데 뒷방에서 하는 마작이 유일
         한 취미였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때문인지 어머니 조차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큰아버지
         도움은 받지 않으려 하셨다. 큰아버지는 잘 살고, 생활이 넉넉한 반면 우리 집은 아버지가 사업 하시다 어려워지다 보
         니 돈 많은 큰집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특별히 남는 아이스케키 사건과 큰아버지 놋그릇 사건

         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도담삼봉 일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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