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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이후에 나는 언제고 큰아버지에게 혼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초조함과 두려움, 그 날 이후 나는 늘 조마조
         마한 시간을 보냈다. 엿 한 번 실컷 먹고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그 날
         은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었고, 놋그릇이 없어진 것을 큰아버지가 아시게 되었고, 노발대발 하실 수밖에. 원래 좁은 동
         네인지라 수소문 끝에 엿장수 고물상에서 큰아버지가 놋그릇을 찾아오셨다. 놋쇠는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긴 했지만,

         깨지지는 않는지라 놋그릇을 수리해서 다시 쓰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아버지가 그 날 처럼 그렇게 화를 심하게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날의 일

         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큰아버지의 매 타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미국 대통령 부시가 테러리스
         트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려고 하듯이, 필사적인 모습으로 소매를 걷어붙인 큰아버지 앞에서 나는 매질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큰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할아버지께 구원요청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안 계시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할아버지가 문을 안 열어 보시면 어떡하나’
         초조한 가운데 큰아버지의 성난 회초리는 시작됐고, 주위가 소란해지자 이내 할아버지가 “뭐냐? 아범아.” 하시면서

         사랑채 문을 열고 등장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등장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내가 저
         지를 일들을 소상하게 말씀 드렸고, 자초지종을 들은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보다 더 크게 노하시면서, “맞을 짓을 했다!”
         고 하시면서, “저 놈은 크게 혼을 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회초리 더미 한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시면서 “그 놈 이리

         들여보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군주가 신하에게 명령하듯 워낙 위엄이 가득
         한지라,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감히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내게 얼른 사랑채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의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셨다. 이거 혹 떼려다 혹 붙이는구나 싶었다. 내
         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는 문을 꽝 하고 닫아 잠그고 “종아리 걷어 올려!”라고 하시고는 이내 내 귓속에다 대

         고 “소리만 질러.” 하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는 금방 할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 아주
         실감나게 소리를 냈다. 큰아버지와 식구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할아버지는 대나무 목침에 수건을 말아서 회초리
         로 내려치셨고, 나는 그럴 때마다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을 해 봐도, 그 때 나의 연기는 아무래도 아카데

         미 아역배우상을 탈 정도의 명 연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빙긋이 웃곤 한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니까, 큰아버지는 마음이 약해 지셨는지 “아버님, 이제 그만 하시지요.” 하였지만, 할아버지는 “이

         런 놈은 아주 본 때를 보여줘서,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할아버지의 가짜 매질은 한동안 계속
         됐다.


















                                             단양팔경 중 제비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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