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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다. 어쩌면 할아버지 자신이 못다 하신 일을 손자인 내가 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던 분이셨고, 우리가 나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하시면서, 신세 한탄을 하실 때는 늘상 올라오는 안주가 일본이
         었고, 한국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씀을 하시고, 손자인 내가 할

         아버지 팔 베개를 하고 잠들 때도 내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시던 말씀이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날 태몽을 꾸셨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꿈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동네로 내려오는데, 온
         통 동네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 ‘이거 큰일났구나’ 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발밑을 내려다
         봤더니, 거대한 똥밭에 빠져서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꿈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데 그 가운데서 누가 막 연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세히 봤더니 손자가 거기서 구름 떼 같은 관중을 모아 놓고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더란

         것이다.


         ‘햐, 이놈이 범상한 놈이 아니구나’ 하고 꿈을 꾸기도 깨기도 하시면서 할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이나, 어머니 가족들인

         이모님과 친척들이 모일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손주인 내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내게 네덜란드 풍차 소년, 큰바위 얼굴 등을 이야기해 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할아버지에게 길들여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작심을 하시고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오성아, 내가 왜 오성이라고 지었는지 아니?“ 하시면서

         그 뜻풀이를 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 ‘나는 꿈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 ‘나는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하나,
         ‘나는 부를 이루는 사람이다.’ 하나, ‘나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이다.’ 하나, ‘나는 미래를 준비해 주는 사람이다’ 하
         는 뜻이었다.



         나는 이것을 가르쳐 주실 때 할아버지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고,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손자인 내게 뭔가를 힘껏
         가르치려고 하셨다. 어린 손자는 그 뜻을 알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오늘날 오성정신(五星精
         神) 운운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 보니 나는 할아버지보다 더 엄
         한 오성정신(五星精神) 신봉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신은 오성정신(五星精神)이고, 할아버지가 늘 주장하시던 것은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였다. 정신은 오성정
         신(五星精神)으로 무장하고, 자세는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의 심정으로 일해야만 나라가 발전할 수 있고, 두

         번 다시 이 나라가 남의 나라의 속국이 되지 않는다고 늘상 일깨워 주셨다.


         꿈에서도 내가 오성정신(五星精神)과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를 내 입으로 말하면서 내 인생을 바칠 것이라고
         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찌 됐건 오늘날 오성정신(五星精神)이다,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다 하
         는 말로 세상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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