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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성장군(四星將軍)이신 이상의 합참의장님이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영
         안실에서 예를 마치고 연세가 80, 90세가 넘으신 고모부님들과 친척들 여러 명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데, 이상의
         합참의장님에게 나이가 당시 60세 정도밖에 안 된 내게 이상의 의장님을 보고 우리집 어른을 잘 모셔주셔서 감사하
         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어보고, 이상의 합참의장님께서 ‘어떻게 권 회장이 살았기에 친척 어른들이 나이 어린 권

         회장을 보고 우리집의 어른이라고 표현을 하는가’ 하는 것을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할아버지에 의해 우리 집안의 어른이 됐고, 누구나 나를 만나면 큰 어른을 대하듯 했다. 그것과 어린 시절

         부터 크리스마스 날 교회에 가면 사탕과 과자를 주는데, 그것을 먹으러 다니던 중 목사님 말씀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
         주린 자를 도와주면 네가 내게 꿔 주는 거다’ 하는 성경 말씀과 할아버지의 말씀이 오늘 나를 다른 일 못 하고 나는 언
         제나 우리나라를 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고,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
         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산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연식 정구 선수 생활을 했던 임경태란 풍기의 고향 진구와 축구
         선수들의 일탈 행동을 보면서 다시끔 할아버지가 일러 주신 오성정신(五星精神)과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가
         되살아나서 일생을 오성정신(五星精神) 선포와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를 정착시키기 위해 바쳤다 해도 과언

         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서당처럼 정경사문종지(政經社文宗指)를 가르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교제가 있어야 하며, 교수
         진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시면서 늘상 나라 사랑을 몸에 달고 사셨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길을 가다
         가도 할아버지를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퉈 인사를 하곤 했다.



         강의장을 만들고, 교제를 만들고, 강의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평생을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내가 완전히 오성정신(五星精神)을 외우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도 않으셨다. 정치는 인사가 만사
         다. 경제는 이익을 남겨야 한다. 사회는 관계성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다. 그날의 그 가르침을 오늘날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 할아버지는 권오석(성)이란



                     한 소년을 정경사문종지와 오성정신이라는


                             시대적 사명감을 갖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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