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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어렵게 살까’ 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힘드시고 고통스러우실 때마
         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3남 4녀만을 바라보고 사셨다. 어머니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여자는 여필삼종(女必三從)
         이라고, 태어나서는 부모를 따르고, 결혼을 해서는 지아비를 따르며, 지아비가 죽으면 자식들을 따르는 게 여자의 일
         생이라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말씀대로 실행하셨고, 누님이나 동생들에게 늘 그렇게 가르쳤고,

         나와 남자들에게는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할 때는 반드시 그 아내가 몸이 아프거나, 돌아갈 친정이 없거나, 살아
         갈 다른 방안이 없거나 할 때는 절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적어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정은
         어머니만의 성역이었다. 반드시 지켜야 하고, 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시면서 살아오셨고, 또 그것을 일생

         동안 실천해 오신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셨다.


         나도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가정을 지키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그런 내 심정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다.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동네 아이들과 싸우든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야단은 우리에게 치셨다. 때로는 그런 어머니가 조금
         은 못마땅하기도 했다. 너무 우리들만 야단치고, 다른 집 아이들은 무조건 감싸주셨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난 후에야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계시다면, 단연 그 분은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우리

         에게 사랑과 봉사, 그리고 희생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 주셨다.


         어머니는 나를 가족 중에서 특히나 많이 사랑해 주셨다. 형님과 결혼 할 형수님도 나에게 먼저 선을 보이고 난 후, 내
         게 물어서 형수님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네 맘에 들면 됐다.” 하시고 결정하셨고, 매형을 결정할 때도 내게 의견을
         물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일임(一任)으로, 더더욱 어머니는 내게 많은 걸 의논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

         런 어머니가 내심 너무나 고마웠다. 어머니의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나쁜 짓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창 시절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해 본 ‘샌님’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도 형님
         이 군대에 갔을 때는 면회도 가시고 하셨는데, 내가 군대에 갔을 때는 단 한 번의 면회도, 편지도 받아본 기억이 없었
         다. 나는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왜 나한테는 면회 한 번 안 왔어?” 하니까, 어머니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 형을 군에 보냈을 때는 애를 혼자 물가에 내 놓은 것처럼 불안했는데, 오석이 네가 군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걱정
         이 안 됐단다. 그냥 너를 믿으니까.” 하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차분히 말씀해 주시던 어머니의 그 신뢰에 찬 믿음의 말
         씀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날 어머니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투정을 부

         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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