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V3_Book_RP
P. 64

나는 풍기 동부교회를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다녔고, 음치면서도(음악의 도레미를

          몰  라  서  ) 성  가  대  에    들  어  가    붕  어  처  럼    입  만    벙  긋  벙  긋    벌  렸  다  . 성  가  를    부  르  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그  노래를  부르는데  동참하는  동안  무엇인가  모를

          고향과도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교회는 열심히 나갔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더욱  더  교회를  찾았다. 아마도  내가  탈선  안  하고  축구나

          연식정구를  하면서,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새로운  꿈과  목표를  재설정하고, 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와 생각하니 바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신앙적인

          힘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유년시절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가장 믿어 주셨고, 할아버지는 더욱 크게 나를 믿고

          기대했으나, 오윤이  형님은  나를  허풍쟁이로  알고  계셨고,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하는  것은  늘  못마땅해  하셨다. 형님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성격이고, 한쪽을 줬으면 한쪽을 받아야 하는, 딱 정해져 있는 틀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계시는  분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그저  가족으로서  생각했고

          평범했다. 나는  새벽  기도도  많이  나가봤고  수많은  기도도  드렸지만, 하느님은
          제대로 몰랐다. 그러던 중 수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하느님을 깊이 알게 됐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  계셨구나  하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내가 워낙 의심이 많고 안 보여
          주면 안 믿으니까,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당신이 살아계심을 믿게 해

          주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하느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인데,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식구는 이제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39) 어머니의 암 선고


          얼마 전 일이다. 시골 형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암이라는 것이었다. 그

          러니 가족들이 모두 쉬, 쉬 하고 그냥 편안하게 돌아가시도록 비밀로 하자는 것이었

          다. 나는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오셨는데… 너무나 기가 막혔
          다. 아버지도 결핵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마저 암이라니.









          64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