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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바지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냈다. “이건 누구 거요?”, “그야 당신
것이죠.” 이번에는 반대쪽 바지에서 또 동전을 꺼냈다. 내 속셈은 30분, 그것도
15분밖에 없는 시간 동안, 살아 온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질 나게 만들어서, 결정적인 시기에 나도
성질을 내면서 마무리를 짓는 쇼크(충격) 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를 약 올리는 것에 시간을 계속 보냈는데, 그는 생각보다 참을성이 많았다. 이것
가지고 약 올려도 당신 것이요, 저것 가지고 약을 올려도 당신 것이요, 도무지 화를
안 내서 내 의도에 걸려들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참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당신 지금 바쁜 사람 데리고 농담이나
하냐고 신경질을 확 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호주인들이 정직하다고 들었다! 내게 분명히 당신은 30분이란 시간을 내 줬고, 나는
그 시간을 당신으로부터 분명히 허락 받았고, 당신에게 30분 동안 만큼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부탁까지 했고, 당신은 그걸 승낙했는데 어찌해서 당신이 내 말을
끊었느냐. 내가 이 30분에 따라서 우리네 식구의 한국 행이냐, 호주 체류냐가
결정되는데, 내가 당신하고 농담이나 하고 싶겠느냐. 당신과 나는 피부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30분이 다 됐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할 말이 더 있었지만, 그와 약속한 시간이 30분이었는지라 이만 말을 끊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내가 노린 승부수(勝負手)였다. 그가 나를 붙잡으면
승산이 있는 것이고, 그냥 우스운 놈이네 하고 보내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행히
그는 관대했다. 아까 자신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
미안했는지, 그 때 나를 붙잡으면서 사과를 했다.
“아까, 미안했다. 말을 끊어서. 그리고 당신이 시간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을 보
니, 당신은 정직한 사람 같다. 편하게 시간을 좀 더 주겠다. 이야기 하라.” 했다. 나
는 조금 더 시간을 번 셈이었다. 이럴 때 연장 시간 좀 받았다고 마음을 놓으면 실패
할 수 있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나는 빨리 빨리 말했다. 한국은 자동차가 왼쪽, 당
신네 나라는 오른쪽 통행을 한다, 한국은 톱질을 할 때 당길 때 썰어지지만, 당신들의
톱은 밀 때 썰어진다. 우리는 등을 켤 때 스위치를 올려야 켜지지만, 당신네는 스위치
를 내려야 켜지고, 우리는 강남이 부촌(富村)인데, 당신들은 강북이 부촌이다. 그런
식으로 10여 가지 사례를 드니까 ‘하, 참 재미있다.’ 하면서 그 눈빛을 보니까, 내
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을 느꼈다.
나는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 호주는 호주의 관습이 있듯이, 한국은 한국의
관습이 있다. 아까 내가 이쪽저쪽 주머니에서 물건과 돈을 꺼내서 누구 것이냐고 물
어본 것은, 호주와 한국의 관습 차이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는 내 아이들이
나 애들 엄마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면, 내가 돈을 준다. 그 돈이 오른쪽에서 꺼내서
주건, 왼쪽에서 꺼내서 주건, 그것은 분명히 내 돈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자
재산 다르고 남자 재산을 다르고 하지 않는다.(꼭 필요한 경우나, 이혼할 경우를 제
외한 경우 이외는 빼고) 그런데 호주는 여자의 재산과 남자의 재산이 결혼한 부부일
지라도 서로 구분한다. 이 경우에는 분명히 랭귀지든 뭐든 각자가 자산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호주의 법이 맞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그러므로 감히 청구하는데, 한
국인을 받아들였으면 한국의 법도 존중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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