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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지, 기쁜 추억은 남고 슬픈 추억은 안 남는 게 아니라,
추억은 그저 추억일 뿐이고 순간은 지나간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평생의 노력이 순간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고 말했지 않겠나 싶다. 나빴던
추억도, 좋았던 추억도, 언젠가 돌이켜보면 아름답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46) 삶에 관해서
나는 삶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본다. 삶이라 함은 육체와 정신, 육체는 뭐고, 또
정신은 뭔가. 인체의 구조,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206개의 뼈와 650여 개의
장단근육, 그리고 수많은 신경들로 이루어져 있고, 뇌와 여러 가지 장기들로 이뤄져
있다. 그것이 다일까?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 그것이
다 일 까 ? 나 는 아 니 라 고 생 각 한 다 . 육 체 는 어 차 피 흙 에 서 와 서 흙 으 로
돌아간다.(하느님이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어) 그 흙에다 생기를 불어넣어서
영생을 주셨다고 했다. 희랍철학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플라티노스(Plotinus)의
유출설(流出說 Emanation : 우주의 모 든 존재와 생명이 우주의 본질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말) 에 서 보 면 영 혼 (soul), 마음(mind) 에 는 죄 가 없고, 오로지
물질(materials)의 세계에만 죄가 존재한다고 한다. 여기서 영혼은 뭐고,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질문을 계속하게 되고,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의 ‘나
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생각하지 않으면 존
재하지도 않는다는 뜻도 되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존재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는 게 힘이다(knowledge is power)’, 또는 ‘모르는 게 약이
다.’ 끊임없이 우리를 혼돈하게 하고, 누구도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삶이며, 어떻
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 없고, 누구도 단정짓는 사람이
없다.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치 앞을 모르고, 내일 일을 모르고, 장래
일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하나쯤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더라’ 하는 개똥철학
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혼돈한 게 인생이고, 복
잡하고 다양한 게 인생이다. 누구도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도 하나 새로운 논리를 내놓고자 한다. 인생은 ‘업적’이라
고 본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남긴다는
것은 전리품일수도 있지만 ‘결과’다.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업적
이다. 하느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세상에 오셔서 쭉정이는 불에 태우고, 알곡은 거둔
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달란트 비유에서 게으른 종의 것을 빼앗아, 열
심히 노력한 종에게 더 주지 않았는가. 많이 남긴 사람에게 많이 준다. 누군가가 내게
인생이 뭐 냐고 묻는다면, ‘인생은 남기는 것 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
을 때 유언을 남기는 것과 같고, 장사꾼이 장사를 하는 것은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
이고,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추억을 남기는 것이며, 한 일생을 살고 간 사람은 흔적
을 남기게 되고, 운동을 하면 건강을 남기고, 잠은 휴식을 남기고, 죽을 때는 뼈를
남기고, 영혼을 남기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그래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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