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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개의 생명
나와 개는 5번에 걸친 인연이 있다. 첫 번째는 잠실 3단지 주공아파트에 살면서 무궁
화 테니스장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그 날은 일찍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책을
보다가 저녁 늦게 뭘 좀 사려고 밖에 나왔는데, 아파트 옆 어둑한 곳에서 낑낑거리는
개의 소리를 들었다. 가 보니 개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때 날씨가 워낙 추워
서 나는 두꺼운 코트를 입고 나갔었고, 개를 만져보니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는지 싸
늘했다. 얼마나 추웠을까…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것 같아서, 얼른 코트를 벗어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를 안고 동물병원을 찾아 나섰
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는지라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찾다가 찾다 겨우 구의 시
장 입구에 있는 동물병원을 발견했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아마 상호가 동도 동물병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곳에 개의 치
료를 부탁하고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갔더니 개는 이미 죽어 있었다. 수의사 말이
“개가 이상한 약을 먹었고, 너무 늦게 와서 살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약 먹었을 때
빨리 데려오지 그랬느냐 하기에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자기가 동물병원을 하면서 당
신처럼 밤늦은 시간에 자기 개도 아니고 남의 개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택시를 타고
병원 위치를 물어 물어 오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면서, 동물을 살리는 의사로서 오
히려 고마워했다. 나는 그래도 치료비는 받으라고 돈을 내려고 하니까, 그는 아니라
면서 한사코 사양했다. 나는 돌아오면서 그 수의사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가 모두 이 수의사와 같은 마음만 가졌으면… 비록 개는 살리지 못했지만
죽는 개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는
갔으리라 생각하며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 왔고, 비록 죽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생명
을 살리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부끄럽지 않았고 그런 내 자신이 좋았다.
두 번째 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삼전동 35-16번지 반지하에 살고 있을 때인데, 주인
집 강아지 하나가 그렇게 나를 잘 따랐다. 집에 들어갈 때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꼬리치며 그렇게 반갑게 나를 늘 맞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이었던 내가 대학
에 강의를 받으러 가는 증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늘 새벽에 테니스 코치를 하
고, 낮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정구장에 라이트를 켜고 다시 코치하
고, 단 1분 1초가 소중하던 때인지라 늘 새벽 레슨을 하고 집에 와서는 그저 세수하
고 학교에 가기 바빴다
잠실 병원 앞에서 137번 버스를 타고 화양시장 입구에 내려서 학교를 가곤 했는데,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새벽 레슨을 끝내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받으러 달
려가는 중인데 자꾸만 방울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강아지가 날 쫓아오
고 있는 것이었다. 가라고 소리치면 달아나다가도 도로 쫓아오고, 또 소리쳐서 보내
면 또 따라오고 해서, 소리를 더 크게 질러 개가 달아나는 틈에 얼른 길을 건너 숨어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이리저리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돌아
갈 듯 했을 때 버스가 왔다. 출근 시간이고 해서 서로 버스를 타려고 달려가는 중에
우연히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강아지는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더니, 내가 있는 쪽
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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