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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버지의 운명
그 즈음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어갔고, 어느새 위중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거동도 힘들었고, 심한 기침과 높은 열로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수업 중인 학교로 날아왔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안동 성수병원으로 달리는 택시 속에서 호흡이 가빠 고통스러워하시는 아버
지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음속으로 ‘아버지 빨
리 돌아가세요.’하고 말했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죄송스럽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실 바에는 그냥 편히 떠나세요.’ 하는 ‘안타까움의 생각이었지만, 그
런 마음을 순간적으로라도 먹었던 것이 오랜 뒤에도 너무너무 후회스럽다. 아버지는
급하게 중환자실로 들어가셨고,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하루를 못 넘기실 것’이란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 옆에 꼭 있게 했고, 마
지막으로 숨이 급하게 가빠질 때 어머니는 슬쩍 나를 밀어서 아버지 손을 내가 잡고
있게끔 했다. 형님에게는 미안했지만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나를 가장 아꼈기 때
문에,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의 유지를 직접 받기를 바라셨나 보다.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어머니도 가족들도 마냥 소리를 내며 곡을 하는데 도무지 눈물이
안 났다. 나는 멍하니 터덜터덜 걸으며 병원 밖으로 나왔고, 그 때는 깊은 밤중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안동 시내를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렇게 기침하시던 아버지 모습
을 아침 식탁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생각하니, 그때부터 눈물인지, 콧물인지 뭔
가 뜨거운 것이 마냥 흘러내렸다. 돈만 있었어도, 수술비만 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
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가난이란 게 원망스러웠다. 그 놈의 돈이 뭔지 그 돈
에 한이 맺힌다. 어린 나였지만 가난에 대해 뼈저리게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돈
이 없어서 무력하게 죽음을 강요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
나 큰 축복인지… 살아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사람은 왜 사는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며, 후회 없는 삶일까? 나는 너무나 많은 질문을 갖기 시작했다.
가난이 뭘까, 무지가 뭘까, 왜 사람들은 그렇게 ‘공부, 공부!’ 하는가, 그야말로 그
때부터 내게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그때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하셨
던 말씀과,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나를 보시며 하셨던 말씀들이 생각났다.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 오석아, 너는 총명하니까, 조금만 하면 금방 잘 할 수 있을 거
야.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맞다. 나중에 사람답게 살려면 공부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니, 그 때부터는 마음이
너무 급하고 급했다. 나는 그때 막 사춘기였고, 이성에도 눈뜨기 시작했다.
연식 정구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연식 정구에 매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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