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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불꽃’이다. 뜨겁고 정열적이란 뜻도 있지만, 그만
          큼 아주 열심히 한다는 뜻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열심히 운동을 했고, 풍기에서 정
          구하시는 분들은 또 내게 큰 기대를 걸게 됐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안동 시합에 첫
          출전했고, 그곳에서 대구 농림고등학교를 만났다. 대구 농림고등학교는 10년간 우리
          나라 고등부 연식정구 부문을 석권하고 있었으며 한일간 교환경기에는 항상 한국대
          표로 나가는 한국 최강의 고등학교 연식 정구 팀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우리가 대구농림고등학교의 상대가 안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기는 3대
          2로 근소한 차이로 우리가 졌을 뿐이었다.

          그 경기에서 그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강력한 인상을 줬고, 대구 농림고등학
          교의 김남규 감독 선생님께서는 경기가 끝난 후 찾아와서, “참 좋은 선수다. 잘만 하
          면 대선수가 될 수 있겠다.” 말씀하시고, 감독 선생님을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하시
          더니 날 보고 “다음에 또 보자!” 하고 싱긋 웃으시고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주무
          감독은 박성훈 선생님이셨고, 나는 대구 농림고등학교에서 키우고 싶은 유망주 선수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학을 오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났고, 그날 밤 오랜
          만에 밤늦게 들마루에 나가서 하늘을 보면서 너무너무 기뻐했던 기억을 잊어버릴 수
          가 없다. 그날 밤 나는 축구 할 때 보았던 그 반짝이는 별빛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별들과 나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나는
          부모님께 상의를 드리고 여름방학 동안 대구농림고등학교로 가서 그곳 선수들과 함
          께 연습을 했다. 김남규 선생님은 대단히 만족해 하셨고, “참 빠르다. 그리고 임팩트
          순간이 참 정확하다.” 하시면서, “열심히만 하면 분명히 한국에서 대선수가 되겠
          다.” 라고 내게 용기를 주셨고, 나는 곧장 전학 수속을 밟고 짐을 옮기고 나서 대구
          에서 풍기로 가는 기차 안에서 세계적인 연식정구선수가 되는 꿈을 꾸며, 마냥 즐거
          웠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런데 전학을 가려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내
          가 전학 가려면 그 동안 육성회비부터 면제해 준 것을 모두 내고 가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가 막혔지만, 학교가 연식 정구부를 살려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보고자 하
          는 학교 측 입장은 너무나 완강했고, 그런 학교 측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지만,
          나에게는 축구에 이은 큰 쇼크였다. 사실 좀 더 넓게 생각해 보면 풍기 출신 중에서
          연식 정구 한국대표 선수가 나오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
          을 텐데 싶었지만, 학교 측 주장은 완강했고, 나는 또 한번 타인에 의해 꿈이 좌절되
          고 말았다.

          청소년기에 있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으로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타인들에 의
          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꿈이 좌절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
          았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처음으로 뒷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울면서 학교를 안 갔
          다. 어머니도 더 이상 학교에 가라고 말씀을 안 하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박성
          훈 체육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오석아, 문 열어. 선생님이다.”, “싫어요.”
          나는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고, 선생님은 들어와 말씀하셨다. “내
          가 비록 기성세대지만, 너에게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석아, 일단 학교에
          나가자.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내 제자야. 분명히 너는……” 선생님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말이 없음을 아시고,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나는 일단 선생님을 따라 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시 나가긴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마음에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뒤였
          는지라, 도무지 운동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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