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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두 사람을 안심시켜 놓고, 염을 하기 시작했다. 염은 아버님이 언젠가 누

          구에게 가르쳐주는 소리를 들은 대로 똑같이 해 봤다. 콧구멍, 입, 항문은 솜으로 틀

          어막고, 두 팔과 두 다리는 몸에 이불 호청을 뜯어서 묶고, 몸은 하얀 이블 호청으로

          둘둘 말아 싸고, 끝으로 끈으로 묶었다. 그런데 시신을 집 밖으로 내가야 하겠는데,
          버팀목과 끈을 같이 묶어서 부목을 했더니 중계동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톱으로 자를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시신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8층에서 1층까지 시신을 업고 내려왔다. 막 내려오니까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구

          급차와 함께 원자력병원 영안실까지 함께 갔다. 그리고 모든 절차와 수속을 다 밟아
          준 다음 얼마 안 있으니까, 그들 친척들이 왔고 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쯤에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고, 누구도 내가 누군지, 무엇 때문에 거기 있다 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수호 엄마는 그저 우느라고 정신이 없고. 그래서 혼자서 슬슬 내려오는데,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잘 했어요.’ 하면서 칭찬해 주는 것 같았다.






          43) 서언 기도


          그 때 마음 속 어디에선가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아무 인연이 없는 분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지켜 주었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하

          느님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그 날 심어주셨다. 나는 그 날 하느님께 서언기도를 했다.

          ‘나의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였다. 나도 모르게 한 나의 서언기도

          였다. 주님께서 미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니까 축복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날의
          서언기도는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 날 이전까지 나는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생각

          은 있었지만, 실천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 날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남

          을 위해 사는 길에 나서게 되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때는 누구도 내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 성격이 남에게 욕먹는

          성격도 아니고, 그 때까지 난 별 무리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서언기도를

          하고 난 뒤부터는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자꾸만 불쌍한 체육인이 눈에 들어오고, 자

          꾸만 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족밖에 몰랐던 나에게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지
          금 와서 생각해보니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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