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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생명
         나와 개는 5번에 걸친 인연이 있다. 첫 번째는 잠실 3단지 주공아파트에 살면서 무궁화 테니스장을 운영할 때의 일이

         다. 그 날은 일찍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책을 보다가 저녁 늦게 뭘 좀 사려고 밖에 나왔는데, 아파트 옆 어둑한 곳
         에서 낑낑거리는 개의 소리를 들었다. 가 보니 개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때 날씨가 워낙 추워서 나는 두꺼운
         코트를 입고 나갔었고, 개를 만져보니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는지 싸늘했다. 얼마나 추웠을까… 그대로 두면 얼어 죽
         을 것 같아서, 얼른 코트를 벗어 감싸안았다. 그리고 그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를 안고 동물병원을 찾아 나

         섰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는지라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찾다가 찾다 겨우 구의 시장 입구에 있는 동물병원을 발
         견했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아마 상호가 동도 동물병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곳에 개의 치료를 부탁하고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갔더니 개는 이미 죽어 있었다. 수의사 말이 “개가 이상한 약을 먹었고, 너무 늦게 와서 살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약 먹었을 때 빨리 데려오지 그랬느냐 하기에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자기가 동물병원을 하면서 당신처럼 밤늦은 시간
         에 자기 개도 아니고 남의 개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택시를 타고 병원 위치를 물어 물어 오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
         면서, 동물을 살리는 의사로서 오히려 고마워했다. 나는 그래도 치료비는 받으라고 돈을 내려고 하니까, 그는 아니라

         면서 한사코 사양했다. 나는 돌아오면서 그 수의사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가 모두 이 수의사와 같은 마음만 가졌으면… 비록 개는 살리지 못했지만 죽는 개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는 갔으리라 생각하며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 왔고, 비록 죽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생명을 살리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부끄럽지 않았고 그런 내 자신이 좋았다.


         두 번째 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삼전동 35-16번지 반지하에 살고 있을 때인데, 주인집 강아지 하나가 그렇게 나를 잘
         따랐다. 집에 들어갈 때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꼬리치며 그렇게 반갑게 나를 늘 맞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이었던 내가 대학에 강의를 받으러 가는 증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늘 새벽에 테니스 코치를 하고, 낮에는 학교
         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정구장에 라이트를 켜고 다시 코치하고, 단 1분 1초가 소중하던 때인지라 늘 새벽 레
         슨을 하고 집에 와서는 그저 세수하고 학교에 가기 바빴다



         잠실 병원 앞에서 137번 버스를 타고 화양시장 입구에 내려서 학교를 가곤 했는데,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새벽 레슨
         을 끝내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받으러 달려가는 중인데 자꾸만 방울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강
         아지가 날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가라고 소리치면 달아나다가도 도로 쫓아오고, 또 소리쳐서 보내면 또 따라오고
         해서, 소리를 더 크게 질러 개가 달아나는 틈에 얼른 길을 건너 숨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이리저리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돌아갈 듯 했을 때 버스가 왔다. 출근 시간이고 해서 서로 버스를 타려고 달려가는 중
         에 우연히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강아지는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안돼!” 하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잠실 병원 앞쪽은 차도 많이 다녔고 대로였다. 그런데 강아지는 그저 나만 바

         라보고, 주위에 차가 오고 가는 것은 보지도 않고 그냥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달려오던 트럭이 그대로 깔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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