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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주인집 둘째 딸을 보아 오면서 늘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은 못했다. 사랑한다
는 말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길 정도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사춘기 시절에 그 집에 세 들어 산다는 열등감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 보니 더욱 더 그 아이 앞에만 서면 내 자신이 작아지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
냥 먼 곳에서 바라보기만 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행복이었고, 어
느덧 그 아이는 내 꿈의 전부가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은 그 때가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하루는 학교를 가는데 앞에 가고 있는 그 애 앞을 차마 앞서 갈 수 없어 한참 뒤에 뒤처져 가느라고, 지각해 교문
에서 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의 인생은 오직 그 아이 하나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이 다음에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눈물 나도록 아껴 주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그 아이가 내 결혼 대상이었다. 연애 편지를 쓸 때도 한글을 몰라서 못 쓰겠고, 그래서 나는 더
욱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그 아이와 결혼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아이는 가끔 코피
를 흘렸고, 나는 그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내가 코피를 대신 흘릴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흘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속으로만 끙끙 속병을 앓고 있는데, 어느 날 희숙이 누님이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아니까 “오
석아, 나도 네가 참 괜찮은 애란 거 안다. 내 동생이지만…” 하면서, 직접 한 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는 나에
게 큰 힘이 되었고, 맞춤법도 틀리는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내 마음을 담아 정성껏 그 아이에게 첫 번째 연애편지를
한 통 썼다.
그로 인해 나는 그 아이와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둘이서 남한천 다리 뚝방(방죽) 쪽으로 평생 처음 그 아이와 한 번 걸
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가까이하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해야겠다고 말했더
니, 그 애는 나에게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미래는 미래에 맡겨 두자는 이야기처럼 들렸고, 나는 그때부터 그
것을 그 애도 나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나는 언제나 그 아이만을 생각했고, 그
순간마다 내 가슴은 온통 장밋빛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아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 나의 최대의 목표가
됐고, 축구에 가졌던 불꽃같은 열정, 그리고 좌절, 연식정구에 가졌던 불꽃같은 열정, 그리고 좌절, 그 이후의 내 목표
는 오로지 그 아이와 결혼해서 눈물 나도록 잘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그 애를 위해서 해주고 싶었고, 죽을 때까지
그 아이만 사랑해 주고 싶었다. 어느덧 내 가슴은 그 아이와 인생을 설계하는 것으로 충만해 있었고, 가슴에는 축구나
연식정구에서 가졌던 그 불꽃같은 정열이 그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 붙었다. 아마도 나는 불을 가지고 태어났는
지, 무엇을 하던지 불같이 하는 성격 하나 밖에는 모른다. 그 당시 나는 첫사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 아이에 대
한 첫사랑은 축구보다, 연식정구보다, 어쩌면 더 큰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날을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보냈
다. 그 아이가 내 가슴에 있는 동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였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언제나 가슴
에 불을 안고 살았다. 무엇인가 뜨거운 것을 하지 않고는 삶의 의미를 못 느낀다. 죽기 살기로 달리고 난 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늘어진 몸의 만족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불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뜨거워야만 사는 사람이고, 그렇게 자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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