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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관들의 명령에 따라 산중턱에 있는 고목나무를 향해 달렸다. 선착순 10명
          까지 자른다는 말에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렸다. 나는 가장 선두로 들어와 기합에서 열
          외가 되었으나, 다른 신병들은 돌고 또 돌고 숨이 목구멍에 차도록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그 날 우리는 신병훈련소에 입소했다. 다음날부터 쉬지 못하고 훈련이 시작되
          었다. 첫날은 제식훈련으로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의 연속이었다. 나는 중대에
          서 1번 번호를 부여 받았다. 번호 배정은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내가 가장 앞 번호가
          되었던 것이다. 권이라는 성이 가나다 순서로 하면 거의 앞이고, 자연스레 나는 ‘왕’
          번이 된 것이다.

          제식훈련 16개 동작을 시작하는데, 분대장인 최병만 조교가 올라오더니 즉석에서 멋
          들어지고 절도 있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뒤 1번부터 몇 번까지 앞줄에 있던 우리
          들을 나오게 하더니 제식동작을 시행하게 했다. 다른 훈련병들은 눈치껏 시범하는
          조교를 따라 잘 하는데, 유독 나만이 따라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교는 “이 고문관
          X끼!” 하더니 냅다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군대에 가기 전, 고등학교에서 가
          르치던 교련시간에 다들 해 본 것이라, 조금만 상기시켜 주면 곧잘 기억이 나서 전부
          가 다 이상 없이 척척 잘 해냈는데, 오로지 나만 엉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 때
          문에 교련시간에 단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던 나는 제식훈련을 해 본 적이 전혀 없
          었기에, 도저히 그들을 따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학교 다닐 때 뭐 했어?” 하면서 전투화로 차고, M16 소총 개머리판으
          로 등을 내리치는 등 기합은 연신 계속되었다. 나의 학창시절을 모르는 교관이나 조
          교가 볼 때, 나는 천덕꾸러기 같은 고문관 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잘 하는 데 나만 제식훈련을 못하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운동선수라서 못
          배운 줄은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변명도 못하
          게  하면서  기합을  주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부터  내  군대  별명은
          ‘왕 고문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에서는 소대 별 축구 시합이 열리
          게 되어 소대원 중에서 축구선수를 뽑게 되었다. “사회에서 축구 좀 해본 사람 있
          나?” 나는 때는 이 때라고 생각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교관의 얼굴은 험악
          하게 일그러졌다. “야! 고문관! 넌 빠져 임마.” 결국 나는 제외되었고, 소대 별로
          11명의 훈련병들이 선발되어 축구시합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우리 소대가 무참하게 지고 말았다. 우리 소대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
          다. 우리는 그 결과로 주말이 되자 다른 소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리만 봉 체
          조를 하며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훈련도 끝나갈 즈음, 우리는 마지막으로 또 다시
          소대 대항 축구 시합을 가지게 되었다.
          그 날도 아니나 다를까, 우리 소대는 2대 0으로 다른 소대에게 지고 있었다. 전반전
          이 끝났을 때 나는 분대장을 맡고 있던 최병만 조교에게 내가 뛸 수 있도록 해 달라
          고 졸랐다. “야, 고문관. 뭐 축구가 애들 장난인줄 알아? 저기 가서 응원이나 해.”
          나는 또 다시 의견을 묵살당한 채 그냥 앉아서 응원이나 해야 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소대는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해 3대 0이 되어버렸고, 만
          회할 기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때 “야, 고문관! 너 한 번 나가봐!” 하는 분대장
          의 외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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