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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참으로 소중하다. 아버지가 능력이 있건 없건, 그냥 아버지라는 그 단어 하나
          만으로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그냥 아버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더 이상의 말
          이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하다. 보고 싶은 아버지, 그 동안 얼마나 괴로우셨어요.
          ‘아버지, 편안히 잠드세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예수님을 믿어요. 어머니도 예
          수님 믿고요. 하느님께 기도 드릴게요. 아버지도 지금부터 예수님 믿으세요. 그리고
          편안히 계세요. 다음에 천국에서 만나요. 지금의 억울한 일도 주님께서 도와주실 거
          예요.
          보고 싶은 아버지께. 아버지, 안녕!’







          7) 어머니

           어머니는 13살이 되던 해에 우리 집에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부유하게 사셔서 유산도 많이 물려주셨고, 유구한 안동 권 가의 양반집이었으며, 집
          에는 시중을 드는 종도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그런 집에 시집을 오셨고, 어머니는
          진사님 댁의 7공주 중 셋째 딸이셨다. 어머니는 7공주 이모님들 중에서도 제일 예쁘
          시고, 피부도 제일 고우셨다. 집 안에 어떠한 행사가 있을 때면 이모님들이 다들 모이
          셨는데, 그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예쁘신 게 괜히 자랑스럽고, 어깨가 절로 으쓱거렸
          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나약하고 나약하신 어머
          니의 일생을 보면서, 나는 그 말이 나의 어머니에게 가장 잘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셔서 고생만 하셨다.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계실 때, 어리고
          어린 3남 4녀를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며 키워서 형님과 남동생은 공무원으로, 누님과
          여동생 둘 다 시집을 보내고, 여동생은 건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시켜 학원 강사
          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잘 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오규와 막내 경희, 둘
          밖에는 없다. 오늘의 우리 식구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궂은 일이란 궂은 일은 언제나 다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
          는 그런 궂은 일을 하시는 동안에도 내게 “너는 운동 선수이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식구들 몰래 식당을 겸하는 정육점에 데려가
          서 고기를 구워 먹이시곤 했다. 식구들 모두에게 고기를 먹일 형편이 못 되셨는지라,
          나만 몰래 데리고 나가셔서 고기를 먹이고, 나중에 옷에서 고기 냄새가 나지 않게 나
          중에 집에 들어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온 몸으
          로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 당시는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어느
          부모인들 고생을 안 해본 부모들이 있었겠느냐 만은, 나의 어머니는 특히나 더 고생
          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의 보리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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