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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쇠 밥그릇, 놋쇠 국그릇, 놋쇠 수저를 싹 쓸어 담아 엿장수에게 갔더니. 너무나 고
          급이고 새 것이라 안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엿을 먹고 싶었던 나는 그 놋쇠 그릇과 수저 등을 망치로 쳐서 찌그러뜨려
          결국 엿 판을 통째로 받아 들었다. 그런 뒤 속이 달아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더 이상 안 들어갈 때까지 먹고 나니까, 나중에 속이 뒤집어져서 죽는 줄 알았다.

          그 사건 이후에 나는 언제고 큰아버지에게 혼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초조함과 두
          려움, 그 날 이후 나는 늘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다. 엿 한 번 실컷 먹고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그 날은 가족들이 모이
          는 날이었고, 놋그릇이 없어진 것을 큰아버지가 아시게 되었고, 노발대발 하실 수밖
          에. 원래 좁은 동네인지라 수소문 끝에 엿장수 고물상에서 큰아버지가 놋그릇을 찾
          아오셨다. 놋쇠는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긴 했지만, 깨지지는 않는지라 놋그릇을 수리
          해서 다시 쓰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아버지가 그 날 처럼 그렇게 화를 심하게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큰아버지의 매 타
          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미국 대통령 부시가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려고 하듯이, 필사적인 모습으로 소매를 걷어붙인 큰아버지 앞에서 나는 매질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큰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할아버지께 구원요청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할아버지께
          서 안 계시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할아버지가 문을 안 열어 보시면 어떡하나’
          초조한 가운데 큰아버지의 성난 회초리는 시작됐고, 주위가 소란해지자 이내 할아버
          지가 “뭐냐? 아범아.” 하시면서 사랑채 문을 열고 등장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등
          장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내가 저지를 일들을 소상
          하게 말씀 드렸고, 자초지종을 들은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보다 더 크게 노하시면서,
          “맞을 짓을 했다!”고 하시면서, “저 놈은 크게 혼을 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회
          초리 더미 한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시면서 “그 놈 이리 들여보내!”라고 단호하
          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군주가 신하에게 명령하듯 워낙 위
          엄이 가득한지라,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께 감히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내게 얼른 사
          랑채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의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셨다. 이거 혹
          떼려다 혹 붙이는구나 싶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는 문을 꽝 하고 닫
          아 잠그고 “종아리 걷어 올려!”라고 하시고는 이내 내 귓속에다 대고 “소리만 질
          러.” 하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는 금방 할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마치 배우
          가 연기를 하듯 아주 실감나게 소리를 냈다. 큰아버지와 식구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
          리고, 할아버지는 대나무 목침에 수건을 말아서 회초리로 내려치셨고, 나는 그럴 때
          마다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을 해 봐도, 그 때 나의 연기는 아무래도 아
          카데미 아역배우상을 탈 정도의 명 연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빙긋이 웃곤 한다.














                                        단양팔경 중 제비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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