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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눈물바다


          하루는 횡성에서 강의를 하는데 울음바다가 되었고, 전국을 돌면서 바르게 살고 열
          심히 살자고 강의하는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내 강의를 들었고, 나는

          가슴으로 강의했다. 가는 곳곳마다 뭐라도 하나 못 줘서 난리였다. 부산의 정사용씨

          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렇게 힘든 지역이고 본인도 힘들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언

          제나 날 위해 줬고 함께 일하던 정권태씨도 너무너무 고마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
          을까.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고 천국에서 만나기를 빈

          다.





          37) 눈물 젖은 100만원


          하루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누가 막 내리기 전에 ‘회장님 아니라 예?’

          하는 게 아닌가. ‘누구시죠?’하니까 ‘부산 주주입니다. 회장님 손 한번 잡아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잠시 만예!’그러더니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흰  봉투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차가 내릴 때까지 꼭 손에 쥐고 있더니, 차에서 내리면서

          ‘회장님 이걸로 요기 하이소!’ 거절할 새도 없이 휑하니 내렸다. 나는 본인이 아는

          척 하는데 회장이라는 사람이 몰라봤다고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이름이

          뭐요?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보내고, 손에 쥐어 준 돈 봉투를 그냥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고 간단하게 김밥을 하나 먹고 나서 돈 1~2만 원 넣었겠지 했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겨우겨우 한글로 회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100만 원짜리 수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아무  것도  안  받는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던 것 같았다. 참 가슴이 뜨거웠다. 나는 지오비 사업을 하면서
          어느  누구로부터의  선물도  받지  않았다. 모두  돌려줬다. 그것은  지오비  식구라면

          누구나  다  안다. 이 100만원이  내가  받았던  첫  돈인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친아버지처럼  따랐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처럼  나를  따랐다. 그런  분들의  믿음이
          계셨기에 내가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지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교주(敎主)란 누명(?)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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