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1 - V3_Book_RP
P. 241

22) 눈물


          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  사업에
          관심을 보여 주었던 14명과 직원 7명을 데리고 호주로 날아 갔다. 물론 경비는 일체

          내가 다 내야 했다. 사실상 승부수를 던져 본 것이다. 만약 이 14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실패로 끝날 경우, 나는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걸고 호주로 갔다. 다들 공짜로 호주에 간다니까 관광하러 가는 줄 알고
          난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도 있고, 그 때 함께 갔던

          서기석 씨(이후 지오비 대표)는 지상에서 술 먹던 생각만 하고 비행기 안에서 공짜

          술을 주니까 호주에서 먹으려고 반찬으로 가지고 온 냄새 나는 깻잎장아찌에 얼마나
          마셔 댔는지, 스튜어디스가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우리는 호주 브리스번에 도착했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윤정도 도장에 짐을 풀고 첫

          날은 그들끼리 회의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 함께
          갔던  직원을  통해서  메모해보도록  했다. 그들은  불만 투성이였고  이  호주까지  뭐

          하러  데려 왔나, 뭐  특별한  거  없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둥, 별의별  의견이  다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가  기가  막힌  내용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김이

          빠졌다.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비  한  푼  안  받고  비행기  태워주고
          먹여주고 재워 주기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데, 우리 한 번 잘 살아 보자고 내가 만든

          시스템  이론도  가르쳐  주고, 잘  살기  위해서  서로  뭉쳐서  노력해  보자는  비전도

          제시해주고  하자는  건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사사건건  불만 투성이였다. 나는
          아무 말 않고 계속해서 강의를 해 나갔다. 강의는 아침 7시~9시, 오전 10 시~12시,

          오후1시~6시, 저녁식사  후  7시~밤12시, 1일 4회 13시간을  강의했다. 사람들은

          힘들어  죽으려고  했다. 나이도 50~70세인  양반들이  하루 13시간  공부  하려니까
          죽  을    지  경  이  었  을    것이다. 다   들    몸  을    뒤척이고  힘     들  어  하  고    고  통  스  러  워  했  다  .

          한편으로는  좀  안타깝고  애처로웠으나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밀어붙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1주일, 열흘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감동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241
   236   237   238   239   240   241   242   243   244   245   246